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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에는 전태일 열사가 살던 '집'이 있다!"

기사승인 2019.11.12  17: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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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경건치 송필경‧정제봉‧최봉주 회원 인터뷰... 대구에 전태일기념관을 설립하려는 이유

11월 13일은 한국 노동운동의 첫 출발점이자 우리 현대사에 가장 큰 발자국을 남긴 사람들 중의 한 분인 전태일 열사의 기일이다. 1948년 대구 남산동에서 태어나 1970년 11월 13일 22살의 젊은 나이로 서울 청계천에서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고 외치며 자신의 몸에 불을 놓았던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1970년대 한국 자본주의의 천박성을 자신의 몸으로 밝힌 '불꽃'으로 드러내주었던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열사의 삶을 기리고 후세에 널리 알리고자하는 흐름이 '박정희의 도시'라고만 알려진 대구에서 일어나고 있다.

지난 3월 창립된 사단법인 '전태일의 친구들(이사장 이재동)'은 열사가 살았던 대구 남산동 옛집을 매입, 열사의 50주기 기일인 내년 11월 13일 대구전태일기념관을 개관하는 것을 목표로 활발한 모금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이에 본지에서는 건강사회를위한치과의사회 대구경북지부(상임대표 박준철 이하 대경건치)를 찾아가 '전태일의 친구들'의 최초 발기인 중 1인인 정제봉 회원 등으로부터 대구전태일기념관 설립 운동의 목적과 의의 등에 대해서 들어보았다.

- 편집자 주

대경건치 최봉주, 송필경, 정제봉 회원, 박준철 상임대표(왼쪽부터)

"지난해 12월 대구 민변 송년회 뒷풀이자리에서 최봉태 변호사로부터 대구 남산동에 있는 전태일 열사의 옛집을 구입해 기념관을 만들고자 하는데 진척이 잘 안된다는 말을 들었다. 사실 그때까지 전태일 열사가 대구 사람이라는 것을 까마득히 모르고 있었다. 전태일 열사의 평전을 쓴 고 조영래 변호사도 대구 사람이라 하고… 전태일 열사의 평전 『어느 청년 노동자의 삶과 죽음』 은 1980년대 대학시절 운동의 기본인식을 다지게 된 시작점이었는데 그 책 속의 주인공이 바로 내가 살고 있는 대구 사람이었던 거다."

대경건치 정제봉 회원은 올 3월 창립한 '전태일의 친구들' 최초 발기를 하게 된 동기를 그렇게 말했다.

"대구에는 근대골목과 김광석 거리가 있다. 전태일 열사는 한국 노동운동의 첫 시발점이자 상징이기도 하고, 조영래 변호사는 전태일 열사의 뜻을 이어받아 지난 1970‧80년대 한국 사회운동에 큰 발자취를 만든 사람이다. 이들이 모두 대구 사람이고, 또 전태일 열사가 생전에 살았던 옛집이 아직 남아 있다고 하는데 당연히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벽돌 한 장이라도 얹어야 한다는 마음이었다."

정제봉 회원

'바보주막'에서 최봉태 변호사에게 지난 정권 시절 대구시에서 전태일기념관 설치를 거부한 적이 있다는 이야기까지 들은 정제봉 회원은 그 자리에서 바로 전태일기념관 설립을 대구 시민단체 차원에서 시작해보자고 제안했다고 한다. 정 회원은 단박에 최봉태 변호사와함께 전태일 열사의 '옛집' 구매 대금 3억5천만 원의 10%인 3천5백만 원을 책임지기로 약속했다.(지금은 도시재개발사업으로 구매 대금이 4억3천만 원으로 올랐다) 그리고 처음으로 끌어들인 사람이 바로 대경건치의 최봉주 회원이다. 그렇게 사단법인 '전태일의 친구들' 창립 작업은 전광석화와 같이 급작스레 추진됐다.

자신을 86학번이라고 소개한 최봉주 회원 역시 대학시절 읽었던 전태일 열사의 평전을 기억하고 있었다.

"열사의 평전을 보면 청계천에서 일하는 여공들이 나온다. 그런데 나에게는 그 이야기들이 낯선 게 아니었다. 어린 시절 시골에서 자라난 나에게 열사의 평전 속에 나오는 미싱공 이야기들은 내 주변에서 실제 존재하고 있던 이야기들이었다. 당시 대구 칠성시장에 가면 내가 살던 동네의 형, 누나, 그리고 친구들이 미싱질을 하고 있었다. 중학교만 졸업하고 더 이상의 진학을 포기한 채 열사처럼 그렇게 살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최봉주 회원 역시 정제봉 회원의 제안을 처음으로 받았을 때 "이 일은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최봉주 회원에게도 전태일 열사는 정제봉 회원처럼 그가 이 세상을 지금 살아가고 있는 이유이자 목표를 만들어준 첫 출발점과 같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가장 아름답고 격조 있는 만남"

전태일과 조영래, 뒤늦은 만남의 의미

"전태일은 우리나라 근대의 여명을 열어준 동학의 최제우, 전봉준처럼 새 시대를 연 인물이다. 전태일은 해방이후 우리나라에 들어선 천민자본주의의 딜레마를 가장 맑은 정신으로 이해한 사람으로, 그가 위대한 점은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이론이나 지식으로써가 아니라 인간적 통찰로써 스스로 자각한 최초의 인물이라는 점이다. 인간적 통찰의 엔진은 바로 '인간에 대한 연민'이라고 할 수 있는데 전태일 열사는 마치 붓다나 예수처럼 그것을 자각하고 통찰한 인물이었던 것이다."

송필경 회원

오래전부터 호치민과 체 게바라, 그리고 전태일 열사에 관심을 가져왔던 대경건치 송필경 회원은 전태일 열사의 삶의 의의를 이렇게 설명했다.

"1970년 '인간은 기계가 아니다, 노동시간을 준수하라, 근로기준법을 지켜라'고 열사가 절규했던 외침은 지식인의 이데올로기에 기반한 것이 아니었기에 더욱 위대한 것이며, 우리같은 먹물에게서는 도저히 볼 수 없는 인간에 대한 깊은 통찰이었던 것이다."

송필경 회원은 전태일 열사의 삶을 하나하나 되짚어가면서 되살려낸 고 조영래 변호사의 평전 작업을 매우 높이 평가하고 있다. 생전에는 단 한 번도 직접 만나본 적이 없던 두 사람이었지만, 그리고 생전에 '대학생 친구 하나만 있으면 좋겠다'고 갈망했던 전태일 열사를 분신 이후에야 찾아와 뒤늦게 이루어진 두 사람의 만남을 한국 현대사의 한 변곡점을 이룬 '가장 아름다운 만남'이라고 그는 칭하고 있다.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은 이 세상 가장 낮은 곳에서 인간 고통의 본질을 알아냈고, 위대한 청년 조영래는 세상 가장 높은 곳에서 가장 낮은 곳으로 찾아내려와 그 고통을 이 세상에 드러냈다. 혼과 혼으로 이어진 두 사람의 인연을 나는 우리 현대사에서 '가장 아름답고 격조 있는 만남'이라고 부른다."

- 본지 2018년 11월 12일자 기사『불멸의 불꽃과 마르지 않는 샘』에서

전태일 열사의 49주기 기일을 하루 앞둔 오늘, 우리가 다시 전태일을 기억하고 또 기념해야만 하는 이유일지도 모른다.

송필경 회원은 "대구에 처음 이사온 것은 아마도 만 5세였던 것 같다"면서 "만 6세에 명덕초등학교에 입학했다가 2학년때 대구 최고의 귀족학교인 사대부속초등학교로 전학했다"고 밝혔다. 그보다 7살 위인 전태일 열사는 1948년 대구 남산동에서 태어나 1963년 당시 명덕국민학교 부설 청록공민학교를 다녔다.

송 회원은 "우리 시대 가장 아름다운 영혼인 전태일 열사와 잠시나마 가까운 이웃에서 공기를 함께 마셨다는 사실이 자랑스럽다"며 "지난달 열사의 옛집을 자전거를 타고 찾아가본 적이 있는데, 열사의 옛집은 나에게 빈곤이 어떤 것인가를 가르쳐준 명덕초등학교 바로 옆에 있었다"고 소회를 전했다.

"대구는 박정희의 도시가 아니라 전태일의 도시"

최봉주 회원

"대구는 일제시대부터 국채보상운동을 처음으로 시작했던 도시였다. 1970년대 한국 근대화의 상징적 인물이자, 우리 노동운동사의 큰 획을 그은 전태일 열사의 기념관을 대구 시민의 힘으로 세워 대구를 바꿔보고자 한다."

"건치는 내가 치과의사로서 흐트러지지 않도록 해준 매우 소중한 존재이며, 그래서 건치와 함께 해온 지난 30년을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다. 대구전태일기념관도 그런 게 아닐까 싶다.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가 전태일 열사의 삶을 기억하면서 하나의 터전을 만들어낸다면, 이후 새롭게 이 세상을 살아갈 사람들이 그것을 기반으로 또 새로운 꿈들을 꾸어갈 수 있지 않을까?"

"우리가 바라는 것은 대구 시민들의 모금으로 건립이 추진되고 있는 대구전태일기념관 설립을 통해 우리가 살고 있는 대구가 단지 보수색 짙은 박정희의 도시가 아니라 전태일의 도시로써 새롭게 기억되고, 또 그러면서 새롭게 변해가는 계기가 됐으면 하는 것이다."

대경건치 송필경, 정제봉, 최봉주 회원은 박준철 상임대표와 함께 그들의 작지만, 큰 소망을 이뤄내기 위해 힘껏 손을 맞잡았다.

"대경건치는 모든 회원들과 함께 대구전태일기념관 설립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해 나갈 것이다."

이인문 기자 gcnewsmoon@gunchinews.com

<저작권자 © 건치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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