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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해고자 김용희, 또 하나의 세월호"

기사승인 2019.08.22  17:0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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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주 재외동포 조선아 씨, 농성장 지키미 활동 '한 달'…삼성 묵묵부답에 분노 해외동포 '문제해결 촉구' 성명서 제안도

삼성해고노동자 김용희 씨의 투쟁이 오늘(22일)로써 74일차를 맞이했다.

삼성해고노동자 김용희 씨의 목숨을 건 투쟁이 오늘(22일)로써 74일차에 접어들었다. 지난달 29일, 55일간의 단식을 중단한 그지만, 강남역 사거리 교통폐쇄회로(CCTC) 철탑 위 목숨을 건 고공농성은 기약없이 계속 진행 중이다.

70일 간의 투쟁기간 동안, 범시민사회단체 및 원로‧중진까지 삼성과 정부에 조속한 문제 해결을 요구했음에도 삼성은 여전히 묵묵부답, 모르쇠로 일관 중이다.

이에 김용희 씨는 지난달 27일, 삼성 해고노동자 김용희 고공농성 문제해결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가 진행한 긴급 규탄집회에서 “지금까지 투쟁하면서, 삼성은 내가 얼른 죽기를 바라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며 “반드시 살아남아 여러분들과 함께 끝까지 싸워 승리하겠다”고 결의를 다졌다.

김용희 씨의 목숨을 건 투쟁에 함께하는 시민사회단체도 그를 돕기위해 분주하다. 삼성 해고노동자 김용희 고공농성 문제해결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는 강남역 1번과 2번 출구 사이 김용희 씨를 지원하는 별도의 천막을 설치하고, 농성장을 만들었다.

천막 농성장에는 김용희 씨의 투쟁을 지지하고 염려하는 시민들이 함께하고 있다. 그 중에는 김용희 씨의 투쟁소식을 접하고 지난달 20일, 호주에서 한국을 찾은 조선아 씨도 있다.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삼성의 노동자 탄압에 분노한 그는 “‘한 달이면 끝나겠지’하는 ‘순진한 생각’으로 호주행 비행기 표를 오는 25일자로 끊었다”고 했다.

한국을 찾은지 보름이 지나 ‘순진한 생각’이 잘못됐음을 깨달은 그는, 김용희 씨의 투쟁을 재외동포에 알리고 「삼성해고 노동자 김용희, 이재용 명예회복‧명예복직을 즉각 실시하라!」 제하의 성명서를 썼다. 이에 호주를 비롯한 해외 22개 지역의 55개 단체, 271명의 재외동포가 성명에 함께 했다.

조선아 씨는 “이번 성명서는 국내 단체의 주도로 조직돼고 발표됐던 기존의 성명과는 달리, 해외에서 SNS 등을 통해 소식을 접한이들이 자발적으로 나섰다”며 “해외 단체 대부분은 세월호 진상규명과 박근혜 정부 퇴진 투쟁 과정에서 만들어진 고국의 민주화와 인권을 염원하는 곳”이라고 강조했다.

김용희 씨 투쟁소식을 듣고 호주에서 한국으로 넘어온 조선아 씨. 그는 "'한 달'이면 문제 해결이 될 거라 생각했던 자신의 생각이 너무 순진했다"고 전했다.

다음은 조선아 씨와의 일문일답이다.

Q. 삼성해고노동자 김용희 씨의 고공농성장을 찾은 계기는?

조선아(이하 조): 호주에서 페이스북으로 처음 소식을 접했다. 분노가 치밀었다. 나 역시 재능교육에서 노동조합을 설립하려다 사측으로부터 심한 탄압을 받았다. 그 시기 사측이 나에게 했던 만행들은 10여 년이 지났어도 어제 일처럼 생생하다. 시간이 지나가도 잊혀지지 않는 아픔이 있다. 김용희 노동자가 얼마나 힘든 시간을 보냈는지, 알게 되니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지난달 20일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그때는 한 달쯤이면 문제가 충분히 해결될 줄 알았는데, 순진한 생각이었다.

Q. 지난달 19일 해외동포들이 삼성에게 사태해결을 촉구하는 성명을 냈는데?

조: 그간 김용희 씨의 투쟁을 개인적으로 전화를 통해서, 그리고 SNS를 통해 꾸준히 알렸다. 그러면서, 각 해외 커뮤니티에서 사실이 퍼날라지고, 단체들이 함께하게 됐다. 기존의 성명서가 국내에서 위에서부터 조직됐다면. 이번 성명서는 밑에서부터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조직돼 성명서를 냈다는 점이 다르다. 김용희 씨 투쟁을 보고 해외동포들이 많이 놀랐다. 납치와 감금, 폭행 등 상상하기도 힘든 일이 실제로 일어난 것 아닌가?

또 하나는 지금 성명에 참여한 해외동포는 ‘세월호 사건’을 보며 아이들이 죽음을 당한 것에 분노한 이들이고, ‘박근혜 퇴진운동’에 함께하며 엮인 이들이다. 누구나 해외에 나가면 애국자가 된다고 하지 않는가? 우리 모두가 우리나라의 민주화와 노동, 인권이 발전하기를 염원한다. 김용희 씨는 하나의 세월호 아닌가. 죽기를 바라볼 수만은 없다.

Q. 삼성해고노동자 김용희 씨의 투쟁을 밑에서 지켜보며 느낀 점은 무엇인가?

조: 처음 김용희 씨를 만났을 때 주저앉아 펑펑 울었다. 김용희 씨는 힘없는 노동자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투쟁하는 것뿐이라고 한다.

김용희 씨와 이재용 씨의 싸움은 대리전이다. 전 세계에서 무수히 많은 노동자들이 삼성에 탄압받았다. 실제로 동남아 등지에서도 노조를 세우려던 노동자들이 김용희 동지와 같이 감금과 협박을 실제로 당했다. 삼성의 노조와해 수법은 전 세계적이다. 김용희 씨는 삼성의 노동탄압에 대항해 그들의 짐을 어깨에 다 짊어지고 올라간 것이다.

촛불로 생긴 문재인 정부도 노동이 존중받는 사회를 만들겠다더니 이렇게 수수방관하면 안 된다. 노동자를 탄압하는 삼성을 묵과하면서 어찌 약속을 지킨다고 할 수 있나?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경제가 어렵다면서 또다시 노동자들이 참으라는 식의 말들이 나온다. 되려 삼성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다. 시민들이 힘겹게 싸워 만든 촛불정권 아닌가? 삼성이 아닌 노동자, 시민을 살려야 한다.

Q. 김용희 씨의 단식투쟁이 55일 간 지속됐다. 어떤 마음으로 그를 바라봤는지.

조: 김용희 씨의 단식이 중단되기를 바라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냥 성과없이 끝나버리면 어찌하나 두 가지 마음이 뒤섞였다. 단식을 해도 사람이 죽고, 만약 김용희 씨가 아무런 성과도 없이 그대로 내려오면 살아도 사는 것이 아니겠구나 싶었다. 목숨을 걸고 올라간 그가 허무하게 그대로 내려온다면, 제대로 살리가 만무했다. 김용희 씨를 생각하면 머리가 복잡하다. 결국 김용희 씨가 단식을 중단하면서도 계속 고공농성장을 지키겠다고 할 때 대성통곡을 하고 말았다.

Q. 삼성해고노동자 김용희 지키미를 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무엇인가?

조: 강남에 태극기 부대가 시위를 하며 행진을 하는데, 엠프 차량이 지나가면서 온갖 자극적인 말들, 육두문자를 써가며 김용희 씨를 욕했다. 세상을 살면서 들었던 욕 90%는 그날에 다들었다. 어찌나 서슴없이 욕하는지. 김용희 씨를 아래로 떨어뜨리기 위해 자극하나 생각했다.

Q. 마지막으로 김용희 씨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조: 어제 김용희 씨와 전화를 하는데 자신이 나중에 천사가 돼서 나를 지켜주겠다고 하더라. 그런데, 천사로 만나지 말고 살아서 만나자. 만나서 마치 지금 이 힘겨운 시간을 옛이야기 하듯 스스럼없이 말할 수 있는 그런 날이 오기를 바란다. 힘내서 잘 버티시라.

문혁 기자 mhljb1@gunch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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