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폭력 왜 참고 살아? 신고하면 되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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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폭력 왜 참고 살아? 신고하면 되잖아”
  • 한국여성의전화
  • 승인 2018.11.16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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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전화-사소하지 않은 이야기』⑲ 한국사회의 가정폭력에 대한 무능력·무대응·무관심의 역사를 끝내야 한다

 

본지는 한국 사회 최초로 폭력피해 여성을 위한 상담을 도입하고 쉼터를 개설한 한국여성의전화와 정기연재에 관한 협약을 맺고, 지난해 6월 16일부터 연재를 시작했습니다.

본 연재에서는 뿌리깊은 여성 차별과 폭력을 폭로하는 #미투운동을 '역사적 필연'으로 규정하고 서로를 존중하는 문화의 시작, 그 이야기를 다뤄나갈 예정이다.

우리사회의 비폭력과 평등을 향한 이야기에 독자들의 많은 관심을 바랍니다.

편집자 주

 

사람들은 가정폭력 피해자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왜 참고 살아? 신고하면 되잖아" 또 이렇게도 이야기합니다. "화해하고 상담, 치료받아서 고쳐서 살아" 걱정된다면서 이렇게도 얘기합니다. "그렇게 힘들면 도망치고 이혼해"

신고하면 된다고요? 경찰에 신고해도 격리 및 접근금지의 긴급임시조치가 취해진 건은 100건 중 0.4건입니다. 검찰에 접수된 100명 중 구속상태로 수사를 받는 사람은 0.8명입니다.

상담 받고 치료받으라고요? 네, 사법기관에서도 그렇게 하라고 합니다. 검찰에 접수된 100명 중 10명만 기소되고, 나머지 90명은 제대로 된 처분도 받지 않습니다. 해봤자 상담명령, 교육 명령을 받습니다. 효과가 있냐고요? 글쎄요.

도망치고 이혼하라고요? 이혼하고, 전화번호를 바꾸고, 개명하고, 이사해도 가해자의 추적과 폭력은 멈추지 않습니다.

신고를 해도 가해자 검거도, 격리조치도, 기소도, 처벌도 안 하는 피해자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상담소를 찾은 피해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죽어야 폭력임을 인정해줄 건가요? 그제야 범죄가 되는 건가요?"

10월 29일 국가의 가정폭력 대응 강력 규탄 기자회견 (ⓒ한국여성의전화)

1.9일에 1명. 작년 한 해 언론에 보도된 남성 파트너에 의한 살인범죄 피해여성은 최소 188명이다. 지난 9년간 누계로 최소 824명의 여성이 남성 배우자나 애인 등 친밀한 관계에 있는 남성에 의해 살해됐다. 한 해 평균 최소 92명으로, 이는 언론에 보도된 사건만을 분석한 최소치에 불과하다.

지난 10월 22일 강서구에서 또 한 명의 여성이 가정폭력으로 이혼한 전 남편에 의해 살해됐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가정폭력으로 인해 수많은 삶이, 생명이 위협받고 있다. 이들의 죽음은 결코 우발적인, 예기치 못한 사고가 아니다. 혼인 관계 내 지속·반복적인 폭력의 연장선에 있으며, 지극히 상습적이고, 선별적이며, 계획적인 범행의 결과이다. 수년 또는 수십 년에 걸쳐 폭력이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동안 국가와 사회는 분명히 폭력을 목격했고, 피해 여성들로부터 구조요청을 받았다. 그러나 가해자들은 폭력을 저지르고도 별다른 제지를 받지 않았고, 폭력은 중단되지 않고 피해자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다. 무능력, 무대응, 무관심. 이것이 바로 한국 사회가 가정폭력에 대처하는 태도이다.

가정폭력 근절을 향한 수많은 외침이 가정폭력의 문제를 한국사회에 가시화시키며, 국가가 가정폭력범죄를 규율하기 위한 별도의 법제를 마련토록 만든 이유는 ‘가정’이 가부장적 위계질서가 강력하게 작동하는 영역이기 때문이며, 이로 인해 폭력이 정당화되거나 축소, 은폐되며 지속되기 쉽고, 생활상 미치는 영향이 광범위해 개인과 전 사회적으로 심각한 피해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가정폭력을 규율하는 법과 정책의 목적과 효과는 가정폭력이 개인의 존엄과 인권을 침해하는 범죄임을 분명하게 확립하고, 피해자의 안전과 인권을 보장하는 것에 있어야 한다.

그러나 가정폭력에 관한 국가 형사사법시스템의 기초가 되는 「가정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이하 가정폭력처벌법)」은 제1조(목적) 조항에 분명히 드러나듯, 가정폭력범죄를 가해자 개인의 “성행의 문제”로 규정하고, 다른 범죄와 다르게 “형사처벌이 아닌 보호처분”을 통해 “가정의 평화와 기능을 회복”하는 것에 방점을 두고 있다. 어떤 관계보다 생활상 밀접하고, 안전과 신뢰, 책임이 요구되는 관계의 사람에게 폭력범죄를 저지른 자를, 고작 몇 시간의 상담이나 교육, 치료만으로 성행을 교정하여, 폭력으로 점철된 관계를 유지·회복시키겠다는 발상은 도대체 어디에서 오는 것인가. 이는 가정폭력범죄의 현실과 철저히 괴리된 것일뿐더러, 가정폭력을 사적이고 경미한 문제로 바라보는 잘못된 인식과 가정 유지에 대한 맹목적이고 비합리적인 신념에 입각한 것이다. 가정폭력을 강화하는 핵심적 요소이자 타개해야 할 대상이 가정폭력처벌법의 핵심이념으로 작동하고 있는 형국이다.

“피해자가 이혼의 의사가 없다”, “피해자가 처벌을 원치 않는다”, “처벌은 오히려 보복의 위험성을 높인다”, “가해자가 처벌받으면 피해자와 가정구성원의 생계나 양육에 문제가 생긴다” 등은 가정폭력사건을 형사처벌의 예외대상으로 처리하는 주된 논리이다. 가정폭력범죄에 대한 형사처리 과정에서 피해자나 가정구성원에게 야기될 수 있는 위험은 피해자와 동반가족의 안전과 생활을 보장하는 조치가 강화되어야 하는 이유다. 범죄피해자에 대한 신변안전조치와 주거 및 재정적 지원, 피해자의 민사·가사소송 절차상의 권리 보장 등을 통해 해결해야 할 문제이지, 범죄를 처벌하지 않을 근거가 될 수 없다. 또한 범죄자의 성행 교정을 위한 처분은 형사처벌과 별도로 또는 병과해서 하면 되는 것이지 처벌을 대신할 문제가 아니며, 철저한 관리·감독과 불이행 시 처벌이 수반되지 않는 한 기대효과를 발휘할 수 없다.

가정폭력처벌법 등 가정폭력에 관한 모든 국가 정책의 목적은 ‘폭력 가해자와의 가정’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폭력으로부터 침해받은 가족구성원의 인권’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어야 한다. 가정폭력은 ‘부부싸움’, ‘가정불화’ 정도로 치부될 동등한 사인 간의 경미하고 사적인 문제, 개인의 불운이나 우발적인 일탈, 병리적인 문제가 아니다. 개인의 존엄과 인권을 침해하는 사회적 범죄다. 우리는 이토록 당연한 명제를 분명히 기억하며, 한국 사회의 가정폭력에 대한 무능력, 무대응, 무관심의 역사를 끝내기 위해 함께 행동해야 한다.

글쓴이 재재 (한국여성의전화 인권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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