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산업구강보건 소사(小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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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산업구강보건 소사(小史)
  • 조영수
  • 승인 2017.11.15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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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대한치과의사학회 조영수 전 회장…한국산업구강보건원 특강

(사)한국산업구강보건원(이하 산구원)이 올해로 창립 20주년을 맞이했다. 이에 산구원은 지난 11일 기념식을 개최하고 앞으로의 산업구강보건에서의 역할을 재정립하고, 각오를 다졌다.

이날 기념식에 앞서 대한치과의사학회 조영수 전 회장이 초청연자로 '우리나라 산업구강보건 小史'를 주제로 우리나라 산업구강보건의 개념과 역사에 대해 짚었다.

우리나라 산업구강보건 역사를 이해하는데 참고가 됐으면 하는 바람으로 원작자의 동의를 얻어 강연 전문을 싣는다.

- 편집자

1. 서론 
2. 조선 농민의 치아위생 - 1936
3. 산업노동 예방치과의학 - 1945
4. 근로대중을 위한 新치과의학 - 1946
5. 산업구강보건 – 결론

1. 서론 

‘산업구강보건’은, 비교적 최근에 구성(構成)된 개념이다.

1987년 이후 직업병과 산업재해의 심각성이 사회적으로 크게 주목을 받았다. 당시 건강사회를 위한 치과의사회는 구강 영역의 산업보건에 대한 조사 연구 및 사업을 본격화하였는데. 산업구강보건이라는 용어는 그 즈음 등장한 것으로 보인다.

‘보건’(保健, Health)은 미군정기에 도입된 미국식 개념이라면, 일제 강점기에는 독일식 개념인 ‘위생’(衛生, Hygiene)이 주로 쓰였다. ’노동위생‘은 지금의 ‘산업보건’에 준하는 용어였다. 식민지 조선에 산업 노동자는 희소하고 대부분 농업 노동자였던 점을 생각하면 노동위생이 정확한 용어였던 셈이다.

우리나라에서 산업구강보건 관련 내용이 처음 소개된 것은 1923년 『개벽(開闢)』에 실린 글이었다고 본다. 한동찬(韓東燦)이 기고한, 「구강과 전신의 영향 및 위생」에 그 내용이 실려 있다.

...일반 공중에 대한 위생적 사업으로 공장 기타 다수의 사원을 가진 회사 및 상점(商店)에서는 소위 공장치과치료소(Industrial Dental Dispensary)가 설비되어 종업원의 신체 건강과 생산 능률 증진을 목적으로 실행하는 중, 일례를 들면 오하요미테-론 시(市)의 유명한 내씨오날 캇수(자동금전출납기제조소) 회사는 일만여 명의 직공을 사용하는 바, 공장 내에는 치과적 시설이 완비되어 종업원으로 하여금 1개 충치도 발생치 못하게 함을 목적으로 매주 정기검사와 또 치료를 시술함에 경비는 회사부담으로 설립된 것이며.... 

서구에서 19세기 말부터 공장에 치과진료실을 설치했던 것은 노동자의 열악한 구강상태가 생산성을 크게 떨어뜨릴 정도로 심각했기 때문이었다. 한동찬의 기고는 외국 사례를 소개하는 수준에 그쳤다면, 그 이후 조선인 노동자의 치아위생에 대한 관심과 다양한 실천 사례를 찾아볼 수 있다.

2. 조선 농민의 치아위생 – 1936.
 
1930년대 후반 일본에서 의학을 공부하는 조선인 유학생과 일본 학생 12명이 식민지 조선 농촌의 사회경제적 조건과 질병 상태를 조사하는 사회위생학 연구를 전개한 바 있다. 도쿄제대 의학부 최응석(崔應錫) 등 8명, 경제학부 1명, 도쿄여의전 3명이 ’조선농촌사회위생조사회‘를 만들어 1936년 7-8월 여름방학 기간 50여 일 동안 경상남도 울산읍 달리(達理)에서 조사하였다.

육영사업단체인 자강회(自彊會)와 일본 재계의 거부(巨富) 시부사와 게이조가 재정을 지원했다. 조사 보고서는 1940년 도쿄 이와나미(岩波)서점에서 『朝鮮の農村衛生: 慶尙南道蔚山邑達理の社會衛生學的 調査(조선 농촌위생 : 경상남도 울산읍 달리의 사회위생학적 조사)』라는 제호로 출간했다.

연구 목적은, ’첫째, 조선 농촌 달리의 위생상태가 농업노동과 관련하여 도시의 각 노동부문과 대비하여, 또한 일본국내 및 기타 각국의 농촌과 대비하여 어떠한 양상을 보여주는가, 둘째, 달리 농민이 보유한 경제적 내용에 기초하여 분류한 각 농민층의 사회위생학적 양상이 어떻게 다르고 유사한지 조사하는 것‘이었다. 조사 동기는 ’조선을 사랑하며 그 적나라한 모습을 이해하려는 내적 욕구‘였다.

세부적인 조사 내용은 경제적 개황, 생활양식(주택위생, 식량, 영양, 의복 위생), 노동 양식(특히 피로와 능률 문제), 체위와 질병, 인구론적 고찰(인구 구성, 모성 생활과 관련된 문제) 등이었다.

치아위생에 대한 조사 항목은 우치(齲齒, dental caries), 결치(缺齒, missing teeth), 치조농루(齒槽膿漏, pyorrhea), 의치(義齒, prosthesis)였고, 치아위생에 관련되는 생활양식 변수로 ’가구당 연간 설탕 소비량‘ 항목을 배치하였다. 조사단 중 도쿄여자치과의전 학생 홍종임(洪鍾任)이 구강 검진을 담당하였다.

표1에서 보는 바와 같이 달리 농민 가구 중 사회경제적으로 상층일수록 우치(齲齒) 및 결치(缺齒) 유병율이 높으며, 치조농루(齒槽膿漏) 유병율이 낮고, 의치(義齒) 장착률이 높았다. 사회계층이 높을수록 가구당 사탕 소비량이 많았다.

전체 조사 중 치아위생의 비중은 적었으나 그 함의(含意)는 적지 않았다. 조사 질병 대부분이 사회경제적 수준이 낮을수록 유병율이 높았으나 치아위생 항목은 반대 양상이 명확했다.

서구에서 치아 우식의 원인으로 생물학적 요인과 행동·습관 요인 이외에 환경·사회경제적 요인에 주목하게 된 것이 그리 오래지 않았음을 감안할 때 학생들의 치아위생 조사 내용은 통찰력이 있었다.

3. 산업노동 예방치과의학 – 1945

1945년 8월 해방이 되었다. 11월 17일 경성(京城)대학 의학부 A 강당에서 ‘진보적 청년의학도 150명이 모여’ 조선산업의학회(朝鮮産業醫學會)를 창립하였다. 창립 취지는 ‘근로대중의 보건문제 해결’, ‘과학적 산업의학이론 확립’이었다. 당시 경성대학 의학부 제2내과 교수로 있던 최응석은 조선산업의학회에 참여하였고, 의학생들로 의료반을 꾸려 영등포 공장 지대를 중심으로 노동자 건강상태와 생활환경 조사 및 치료 활동을 전개했다.

그 무렵, 영등포 소재 경성방직(京城紡織)에서 공장 노동자들의 치아위생 상태와 관련 요인을 조사하던 젊은 치과의사가 있었다. 1940년 경성치전 졸업생 김문조(金文祚), 그에게는 “노동치과위생학적 견지에서... 이 나라에 산업노동 예방치과의학을 창설하려는 노력의 일환“이었다.

... 근로자들의 건강한 치아가 작업능률 향상에 또한 크게 영향을 주는 것과 동일하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 바이며, 齒科醫 자신도 노동(산업)치과의학의 新분야를 개척하려는 의욕이 적은 것을 통감하여... 1945년 광복에 의해 필자는 이 나라에 산업노동 예방치과의학을 창설하려고 서울시내 모 방적공장 여근로원(566명)의 구강보건상태를 조사하였다.

해방 직후의 혼란기임에도 공장 진료소의 인력, 시설, 기숙사 등 후생시설이 양호하다. 566명의 출신 지역, 연령, 학력, 치아위생 관련 지표들을 통해 그 시기, 그 공간의 장면들이 그려지는 듯하다.

김문조는 조선치과의사회 공보이사로 기관지 발행을 주관하였다. 당시 ‘치과’ 명칭을 ‘구강과’로 바꾸자는 주장이 제기되어 치과의사회의 기관지 제호를 ‘구강과 회보’로 바꾸기도 하였다. 1948년 5월, 각계의 후원을 조직하여 조선구강위생연구소(朝鮮口腔衛生硏究所, 소장 김문조)를 설립하였다. 사업 목표는 방대하고 의욕이 넘쳤다.

① 도시, 농촌, 기타 집단별 각 연령별 동포 구강보건상태를 조사하여 과학적 통계작성
② 학교, 군대, 산업노동 치과위생 확립
③ 지방병성 치과질환을 조사, 그 원인 및 대책 연구
④ 우치(齲齒), 치조농루의 위생학적 연구
⑤ 구강위생품 연구
⑥ 보건서적 발행
⑦ 영화반 (구강위생영화제작, 학교, 군대, 공장, 광산, 농어촌 순회상영)
⑧ 강연반 (구강위생의 출장강연 및 라디오방송극(劇) 등)

‘농어촌을 찾아다니며 우리 민족의 구강위생 상태에 대한 정확하고 방대한 통계 작성에 착수하였으나 6.25로 수포화되었음은 안타까운 일’이었다. 그는 긴 세월 치과계를 떠나 남쪽 지방에서 교육자로 살았다. 1975년, 치과계로 돌아와 다시 영등포를 찾았다. 30년 전 조사 결과와 비교하여 발표하였다.

... 30년 후 다시 그 공장 여근로원(女勤勞員) 1,344명)의 구강보건상태를 조사하여, 삼석(三昔)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치아와 구강 내에 어떠한 변화의 존재 여부를 궁지(窮知)하려고 노력한 끝에 얻은 결과를 강호의 동호 제 선비 앞에 보고한다..

30년 전후를 비교하면 소위 근대화의 음지와 양지가 드러난다. 공장 내 진료소는 인원도 시설도 크게 축소되고 기숙사는 없어졌다. 노동자들의 출신 지역은 충청이 줄어든 만큼 호남이 늘었다. 학력 수준이 크게 개선되지 않았다. 우식이환자율. 우식치아율, 처치율, 치주조직질환, 치조농루, 결손치 보유자율, 보유 결손치수, 칫솔사용자 모두 2-6배 늘었다. 그의 결론의 다음과 같았다.

…칫솔을 사용하고 열심히 구강 청소를 하는데도 불구하고 우식의 파장은 일취월장하니 ”우식 예방에는 조석(朝夕) 치아 청소라는 낡고도 曖昧한 우식 예방법에 치과의(齒科醫)는 집착되지 말고 우식의 본태(本態)를 규명하고, 나아가 이를 예방하여 인류에 공헌하도록 치의학자들은 발분노력(發奮努力)해야 할 것으로 믿는다.

4. 근로대중을 위한 新치과의학 – 1946

1945년 11월 경성치과대학 학생회는 3대 강령을 채택하였다.

 ① 우리는 제국주의적 잔재(殘滓)를 일소하고 진정한 민주주의 건설에 노력함.
 ② 우리는 학문의 자유와 학원의 자치를 확보함.
 ③ 우리는 조선의 전국민, 특히 근로대중을 위한 신(新)치과의학 건설에 매진(邁進)함.

이 시기의 근로대중이라면 주로 농민이었고 산업노동자는 많지 않았지만, 당시 치과계 최초의 언론지에 기고한 학생회 위원장 윤철수의 글에서 넘치는 기개를 느낄 수 있다. 

... 우리는 종전(終戰) 직전 일본이 의료법 개정 실시에 초조(焦燥)하던 것을 보았다. 건민강병(健民强兵)을 위한 것이었으나 그 내용은 진보적이었다. 즉 의료시설의 일반화이다. 그 때 우리는 의학대(醫學隊)의 무의촌 순료기(巡療記)를 읽으며 깨다름이 얼마나 컷든가.
조선 치과계에 끽긴(喫緊) 문제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근로 대중에 대한 의료시설이다. 즉 조선의 8할을 점한 농민 노동자를 위한 치과의학 건설인 것이다. 무슨 방면이나 다 같이 이 근로대중이 조선의 주인공이요 또 전체인 것이다. 우리는 건국에 있어서의 경제 정치 문화 각계를 모다 이 같은 관점에서 보아야 만 되는 것임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먼저 농민의 현상을 보자, 경제적 숫자를 들지 않아도 우리는 일제 착취(搾取)하의 농민 생활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아니 만일에 알지 못하고 또 알랴 하지도 않고 유산계급 상대의 고급 장식 치과요법만을 생각하는 사람은 이에 말할 필요가 없다.

우리는 농민을 위하여 우리의 치과의학을 적합시켜야 한다. 우리의 농민은 당분간 금박충진(金箔充鎭)을 하기 어려우리라. 또 우리의 농민은 당분간 가철 뿌리지를 할 수 없으리라. 그보다 우리는 영양부족과 폐혈증과 악액질(惡液質)의 요법을 잘 준비하여야 할 것이다.
치과의사는 도시의 소(小)뿌루조와로 행세할 꿈을 버릴지어다. 농촌의 위생사상 보급과 예방의학 지도자로 국민 건강의 기초가 되고 지침이 되어야 할 것이다. 아니 과도기 무의빈촌(無醫貧村)의 지도자로서 때로는 자기의 식량을 자경(自耕)할 각오까지 갖어야 할 것이다....
의료시설의 일반화는 그 근본책이 예방의학에 있다. 우리는 예방의학을 확실히 해득하기 전에는 사회에 나가지 말아야 한다...

5. 산업구강보건 –결.

1960년대 이후 사무직, 선원, 철도 노동자 등 특정 직업군의 구강위생에 대한 연구. 치과의료인의 직업병에 대한 발표가 있었으나 이 분야에 대한 치과계나 산업보건계의 관심은 미미하였다.

1980년대에 산업재해와 직업병 실태의 심각성이 환기되고, 1988년 7월, 15세 소년이 수은중독으로 사망하면서 산재추방운동이 확산되었다. ‘건강사회를 위한 치과의사회’ 의 원진레이온 노동자 이황화탄소 집단 중독 사건 역학조사 참여(‘91.8)와 결과 발표, 노동자 구강검진사업단의 29개 사업장 근로자 1,911명에 대한 구강검진 및 설문조사(‘91.10-12) 등 활동은 ’산업구강보건협의회‘ 출범으로 이어졌다.

1) 산업구강보건협의회 (The Korean Association of Occupational Dentistry, 1992~1997)

산업구강보건협의회는 창립(1992.4.25) 이후 만 5년 동안 한정된 재원으로 연 12~15회의 운영위원회, 협의회지 연 1회 발행(1992-1996), 연 3~4회 총 15회(27연제) 정기학술집담회(표5), 회원연수, 대한치과의사협회 제41차 종합학술대회(‘94.10)에서 산업구강보건 심포지엄, 서울특별시치과의사회 종합학술대회(‘96.6) 발표 등을 하였다. ‘염산 등 특정 화학물질 취급근로자에 대한 특수건강진단의 치아 및 주위조직에 대한 연2회 치과검사 의무화’에 적극 개입하였고, 1995년 보건예방사업에 ‘구강검사’가 채택되자 대한치과의사협회의 ‘구강건강진단사업의 개선을 위한 공청회’를 2년(‘95.11, ‘96.10)에 걸쳐 주관하였다.

그러나 구강검진체계 및 대학 차원의 연구 부족, 전문적 진단치료기관이나 산업보건계와의 관계 미비, 정책과 제도 미비 등 어려운 여건에서 동력(動力)이 소진, 1997년  사단법인의 새로운 틀이 갖추어지면서 임의단체로서의 활동을 마감하였다.

2) 사단법인 한국산업구강보건원 (The Korean Industrial Dental Health Association. 1997~2006)

발기인대회(1997.3.19) 이후 1997년 5월 3일, 각계의 축하와 격려 속에서 창립된 한국사업구강보건원은 노동부 산하 사단법인으로 인가를 받고 우리나라 산업구강보건 분야의 독보적인 조직으로 조사연구, 학술활동, 토론회 개최 등 사업을 수행하였다(표 6,7).

3) 결론

산업구강보건원 창립총회 특별강연에서 백도명 교수는 산업보건의 현황과 전망을 다음과 같이 정리하여 제시하였다.

‘산업의학이 20세기 초부터 Industrial Medicine으로 불리어졌으며, 현재 산업보건이라는 용어도 이에 유래한다. 그러나 20세기 초반을 지나면서... 조직화된 사업장의 생산직과 관리직을 포함, 직업을 가진 근로자 전뷰를 대상으로 하는 직업의학, 즉 Occupational Medicine이 등장하였다. ... 건강유해요인에 대해서 사업장 내에서만이 아니라 일반 환경에서도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노출된다는 점과 사업장 안팎을 총괄하는 전체적 관리의 필요성이 대두됨으로써 환경의학(Environmental Medicine) 분야로 발전하게 되었다. 이러한 추세가 지속되는 경우 앞으로 사회 전체의 모든 환경 요소를 총괄하는 사회의학(Social Medicine)으로 발전하리라 예측된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접근할 수 있는 분야로,

첫째, 치과 종사자의 직업상 위해요인과 근무환경에 대한 접근이다. 치과진료실 및 치과기공소는 중금속 등 건강위해물질을 사용하는 (환경)보건학적 공간이다.

둘째, 환경보건에 대한 접근이다. 산업장에서 단기간에 고농도 유해물질에 폭로되는 경우와 달리 저농도의 유해물질에 장기간 노출되는 환경질환에 대한 대처이다. 치아는, 만성적 인체 중금속노출의 유효한 지표이다. 한국인 치수 주변 상아질 납농도와 연관된 환경요인에 대해 보고된 바 있다.

셋째, 구강보건(치아위생) 불평등 해소를 향한 체계적 실천이 필요하다.

 

조영수 (대한치과의사학회 전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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