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에 찔린 여자치과의사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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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에 찔린 여자치과의사에게...
  • 편집국
  • 승인 2016.09.05 18:49
  •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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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 아직 안 찔린 여자치과의사가

 

우리 중 누군가가 겪었어야 할 일을
당신이 우리 대신 아픈겁니다.

정말 많이 아프겠지만
너무 많이 아파하진 않기를.

강남역에서,
등산로에서,
집 앞 골목길에서,
많은 여성들이 칼에 찔리고 끌려가 살해 당할 때
슬픔 속에 불안했지만
그래도 설마했습니다.
여직원 여의사 서너명
온종일 작은 진료실에서 일하는 우리지만
그래도 환자와 의사가 만나는 공간인만큼 자부심을 가졌으니 설마...했습니다.

그래서 더
뉴스를 듣고도 믿을 수 없었습니다.
설마 진료실에서까지 여성이 칼에 찔리는 사건이 생길 줄은 몰랐으니까요

설마했던 우리가 어리석었던 걸까요?
의료인이라는,
진료실이라는 권위가 채워주기에는
여성이라는 결함이 너무 크다는 걸 간과했던 걸까요?

아가씨말고 진짜 원장님 오라고 하던 환자의 말들,
너희 여자들 때문에 남자신입생 줄었다고 타박하시던 대학 때 교수님의 말씀,
너무나 일상화된 폭력에 이젠 무뎌져 경계심을 놓친걸까요?

그럼 이제 대중교통의 운전자석처럼
진료실 의자에 플라스틱 안전망이라도 쳐야하는 걸까요?

네,
사실 저도 그 누구도 답은 모릅니다.
해결방안이 뭔지도
어떤 대비책이 가능한지조차 모릅니다.

다만 확실히 아는 건,
폭력은
못난 놈들이
만만해보이는 약자에게 행하는
분노조절장애행위일 따름이라는 것!

선생님의 죄라면
정신장애자를 환자로 만났고
여자라서 만만해보였다는 것뿐입니다.

선생님,
선생님이 중환자실에 계시는
어제도 오늘도 저는 환자를 봤습니다.
환자가 벌떡 일어설 때마다
어쩌면 지레 움찔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아마
내일도 환자를 보겠지요.
우리는 의사니까요.

다만 한가지,
그저 운이 좋아 아직 안 다친 우리들은
감히 위로조차 건네기 조심스러 조용한 것일뿐,
가슴 속의
뜨거운 분노와 놀라우리만치 차가운 각성을 벼려

더 이상 아픔이 없도록
또 다른 아픔이 없도록
당신의 아픔이 헛되지 않도록
진료실 폭력 근절을 위해
여성에 대한 폭력 반대에
할 수 있는 것들을 해보겠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힘내십시오... 따위
어설픈 응원은 못하지만
너무 많이 아프시지 않기를
많은 사람들이 정말 간절히 간절히
기도하고 있습니다.

당신은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 하나만
부디 기억해주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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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월드 2016-09-08 16:08:02
너무 어처구니 없는 일에 가슴 무너집니다. 선생님! 힘내세요. 모두가 선생님의 빠른 쾌유를 기원하고 있답니다.

힘내요 2016-09-06 12:48:34
엄청난 욕을 해대고 싶지만, 참습니다. 정신질환 환자에게 당하신 선생님! 꼭 힘내시고 빨리 일어나시고, 환자의 입장에서 죄송하단 말씀 드려요.

해피맘 2016-09-06 12:43:35
선생님 정말 힘드시죠? 어떤 위로의 말도 소용없겠지만, 동료 여자 치과의사들이 있음을 잊지 말아주세요. 좋은 환자들도 많이 계시지만, 말이 통하지 않고, 이성이 작동되지 않은 환자들로 인해 힘들었던 적이 한두번이 아니고, 이런 환자들에게 치료를 꼭 해줘야 하나? 하는 고민스런 마음이 들 때도 사명감을 발동시켜 치료했던 적이 많았지요. 아마도 선생님도 그러셨을 겁니다. 의료인의 사명감! 사회적인 병리현상이 만연되어 있고, 돈이면 무엇이든 되는 자본주의 세상이지만, 사명감이 없으면 계속 할 수 없는 직업이 치과의사인데! 참 서글픕니다.

여성치의 2016-09-06 12:39:06
힘내세요! 선생님을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진짜 진짜 혼자가 아니시란 걸 잊지 말아주세요~ 모든 의료인들이 안심하고 치료할 수 있는 환경이 되도록! 어려움이 왔을 때 혼자서 해결하지 않고, 함께 나눌 수 있는 그런 장이 많아지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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