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중 누군가가 겪었어야 할 일을
당신이 우리 대신 아픈겁니다.
정말 많이 아프겠지만
너무 많이 아파하진 않기를.
강남역에서,
등산로에서,
집 앞 골목길에서,
많은 여성들이 칼에 찔리고 끌려가 살해 당할 때
슬픔 속에 불안했지만
그래도 설마했습니다.
여직원 여의사 서너명
온종일 작은 진료실에서 일하는 우리지만
그래도 환자와 의사가 만나는 공간인만큼 자부심을 가졌으니 설마...했습니다.
그래서 더
뉴스를 듣고도 믿을 수 없었습니다.
설마 진료실에서까지 여성이 칼에 찔리는 사건이 생길 줄은 몰랐으니까요
설마했던 우리가 어리석었던 걸까요?
의료인이라는,
진료실이라는 권위가 채워주기에는
여성이라는 결함이 너무 크다는 걸 간과했던 걸까요?
아가씨말고 진짜 원장님 오라고 하던 환자의 말들,
너희 여자들 때문에 남자신입생 줄었다고 타박하시던 대학 때 교수님의 말씀,
너무나 일상화된 폭력에 이젠 무뎌져 경계심을 놓친걸까요?
그럼 이제 대중교통의 운전자석처럼
진료실 의자에 플라스틱 안전망이라도 쳐야하는 걸까요?
네,
사실 저도 그 누구도 답은 모릅니다.
해결방안이 뭔지도
어떤 대비책이 가능한지조차 모릅니다.
다만 확실히 아는 건,
폭력은
못난 놈들이
만만해보이는 약자에게 행하는
분노조절장애행위일 따름이라는 것!
선생님의 죄라면
정신장애자를 환자로 만났고
여자라서 만만해보였다는 것뿐입니다.
선생님,
선생님이 중환자실에 계시는
어제도 오늘도 저는 환자를 봤습니다.
환자가 벌떡 일어설 때마다
어쩌면 지레 움찔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아마
내일도 환자를 보겠지요.
우리는 의사니까요.
다만 한가지,
그저 운이 좋아 아직 안 다친 우리들은
감히 위로조차 건네기 조심스러 조용한 것일뿐,
가슴 속의
뜨거운 분노와 놀라우리만치 차가운 각성을 벼려
더 이상 아픔이 없도록
또 다른 아픔이 없도록
당신의 아픔이 헛되지 않도록
진료실 폭력 근절을 위해
여성에 대한 폭력 반대에
할 수 있는 것들을 해보겠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힘내십시오... 따위
어설픈 응원은 못하지만
너무 많이 아프시지 않기를
많은 사람들이 정말 간절히 간절히
기도하고 있습니다.
당신은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 하나만
부디 기억해주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