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과의사의 위기와 자율징계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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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과의사의 위기와 자율징계권
  • 안재현
  • 승인 2016.08.29 18:22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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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 안재현 논설위원

모두들 치과계가 위기에 처했다고 한다. 수입이 이전보다 못해지고 경쟁이 치열해져서 문 닫는 치과가 늘고 있는 분위기 탓도 있겠지만, 치과의사들 간에 동료로서 예의와 환자에 대한 책임감이 사라지고 있는 분위기도 한 몫 하는 것 같다.

또한 일부 치과들은 치과는 경영이라고 선언하다시피 하는 풍토가 치과의사의 사회적 품격을 떨어뜨리고 있고 전문직으로서 자존감을 무너뜨리고 있기도 하다.

20여년을 넘게 치과를 개업해 있는 필자로서는 근래에 와서 도무지 이해하기 힘든 일들을 목격하고 있다. 착한 가격으로 환자를 모시겠다고 홍보하는 치과에서 교정을 한답시고 소구치 8개를 몽땅 발치하고 와서는 교정 후 임플란트를 하기로 했다고 한다. 더 큰 문제는 이런 행위에 대해 죄책감이 들지 않는 풍토일 것이다.

최근 후배 치과의사들의 대화 속에서 개업을 위해서는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고들 하는데, 최선을 다해서 진료를 하고 수가를 높게 받던지 치료는 대충하고 박리다매로 환자를 유치하든지 해야 살아남는다는 주장이다.

이 정도라면 전문직으로서 치과의사의 위상이 심각하게 흔들리고 있는 것이고 일부 치과의사의 치료가 오히려 환자의 상태를 악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기도 하다.

치과 전문직은 다른 전문직들과 마찬가지로, 전문적 과학지식을 기반으로 치과의사의 자율적 조직을 결성해 국가로부터 배타적 진료권을 법적으로 인정받아 만들어진 직업이다. 근대의 많은 직업군들 중에서도 유독 전문직만 배타적 권리를 인정받은 이유는 이 직업군은 스스로 윤리규범을 만들고 공중의 이익에 부합되지 않는 행동이나 능력이 부족한 사람들을 징계하는 과정을 통해 공중으로부터 지지를 받아왔기 때문이다.

치과계 세간에 흐르는 말 안 듣는 회원을 징계하는 것이 자율징계권이 아니다. 자율징계권은 전문직의 자치활동을 말하는 것이고 강력하게 '윤리규범'을 준수해 공중의 이익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치과계를 이끌고, 이런 과정에서 치과전문직에 대한 공중의 신뢰를 지켜 나가는 것이다.

한국은 전문직이 윤리규범과 자치활동을 통하여 공중의 신뢰를 기반으로 도입되지 못하고 서구의 제도를 그대로 법으로 도입되면서 생겼기 때문에 전문직으로서 책임과 의무에 관해서는 거의 인지 못하고 있다고 하겠다.

실제로 치과대학을 다니면서 치과의사의 윤리규범에 대한 강의가 거의 없었고, 직업에 대한 소명과 윤리의식을 함양하는 예는 드물다. 선진국의 경우 자율징계권을 포함한 전문직 자치가 일반화돼 있어서 치과의사 윤리와 윤리규범은 의무적으로 교육해야 하는 것에 크게 대비된다.

또한 치과의사가 돼서도 윤리규범과 공중에 대한 의무 등 윤리규범의 교육은 거의 없다 보니 돈 잘 버는 방법에 대한 사설 강좌만 즐비한 실태이기도 하다.

이렇다 보니 치과전문직에 가장 중요한 요소이자 배타적 진료권의 핵심인 공중으로부터 지지는 날로 떨어지고 심지어 “치과의사와 장사가 무엇이 다른 가?“라는 의문을 공중으로부터 받고 있는 실정이기도 하다.

치과계의 위기는 단순히 치과의사의 숫자가 많아져서 경쟁이 치열해졌기 때문이라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다. 과거 평안한 생활에 안주하거나 치과 의료에 지나친 경영마인드를 도입해 전문직의 위상을 떨어뜨린 결과, 전문직의 소명의식이 약화되고 상업적 경영이 우세를 보이면서 위기가 왔다고 생각한다.

일부 네트워크 치과에서 잘못된 치료에도 아랑곳 않고 탈이 나면 협상 팀을 내세워 협상을 하거나 돈으로 때우면 된다는 형태들은 전문직으로서 자질 문제이지만 아무런 죄책감 없이 이뤄지고 있다.

수입 실적에 따라 치과의사와 스텝이 매번 교체하는 경쟁의 도입으로 책임 치료를 하지 못하고, 치료한 의사가 바뀌어 하소연 할 곳도 없다는 환자가 떠돌아다니는 데도 아랑곳 않고 있다. 의사를 고용하면서 성과에 따른 보수를 계약하지 못하게 하는 프랑스의 의료규범과 확연히 비교된다.

이런 행위를 방치하면서 치과의사는 공중으로부터 신뢰를 잃어가고 있다. 심지어 “왜 일반인은 치과의원을 개설하면 안되냐”는 의문이 일부에서 퍼지고 있는 이유도 의료기관의 지나친 영리추구 행위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치과 위기의 극복은 “치과의사 윤리규범”을 중심으로 한 자치권의 확보에서 시작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강력한 “치과의사 윤리규범”의 실천 의지를 명확히 하여야 하고, 공중의 이익을 위해서는 회원 개인의 잘못을 엄단할 수 있는 기강이 있어야 한다.

자율징계권은 내부의 단속이나 회원 길들이기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치과전문직의 신뢰 회복의 문제이고 위기의 치과계를 바로 세우는 문제이다. 이제 치과 계 문제를 내부에서 공중의 영역으로 확장해 나가야 할 때이다. 자율징계권은 치과의사, 국가 기관과 공중 대표까지 포함한 위원들이 공익적 판단을 한다는 전제 하에 주는 사법적 권한이며 이는 치과의사들이 공공의 영역에서 과감하게 윤리적 결단을 내려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치과계의 위기는 단순히 경영의 위기가 아니라 치과전문직의 위기이다.

치과의사 윤리규범에 기초한 공중의 신뢰를 바탕으로 자율징계권을 포함한 전문직자치를 가꿔 나가면서 위기를 돌파할 때이다.

(현대치과 원장, 본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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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재현 2016-08-31 16:19:07
전문직은 전문적 지식이 있어야 평가가 가능합니다.
대중의 투표는 표면적 친절도에 치우칠 가능성이 있을 겁니다.
그래서 전문직이 의료법과 윤리강령에 준한 자치(autonomy)를 통하여 전문직의 능력을 배양하고 윤리규범에 맞는 진료와 환자 동료간의 관계를...높은 규범으로 공중의 신뢰를 받는다고 생각합니다

포터 2016-08-30 10:26:09
치과의사가 대중의 지지를 필요로 한다면 진료받은 환자 대상으로 4년에 한번씩 라이센스 재신임 투표를 하면 어떨까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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