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로시마 길 따라 ‘반핵‧평화‧생명’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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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로시마 길 따라 ‘반핵‧평화‧생명’ 배웠다
  • 안은선 기자
  • 승인 2016.08.12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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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료인대표단, 민의련 ‘의료와 평화’의 원점 히로시마서…“바다를 건너 한‧일 평화 연대가 계속 되도록”
▲ 한국의료인대표단이 원폭 돔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건강권실현을위한보건의료단체연합(이하 보건연합)은 전일본민주의료기관연합회(이하 민의련)의 초대로, 한국의료인대표단으로서 지난 4일부터 7일까지 일본 히로시마에서 열리는 ‘원수폭금지세계대회’에 참가했다.

대표단으로 건강사회를 위한 치과의사회(이하 건치) 김용진 공동대표, 반핵의사회 김미정 공동운영위원장, 최영아 회원, 보건연합 전진한 정책부장,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이하 인의협) 이보라 사무국장, 이미옥 사무팀장, 인의협에서 모집한 유기훈, 김준형, 김성록, 유형섭, 배기태, 고은산, 이서영, 이지예 정지현, 김경아 학생 등 10여명의 의대생이 참석했다.

이들은 3박4일의 일정으로 민의련의 ‘의료와 건강 그리고 평화’ 추구의 원점인 히로시마를 방문해 ▲‘피폭자 의료’를 주제로 아오키 가츠아키 원장(히로시마의료생협)의 강연 ▲한‧일 의대생 및 연수의간 교류회 ▲평화기념관 견학 ▲피폭자 간담회 ▲원수폭금지세계대회 민의련 참가자 교류회 ▲한국의료인대표단 참가 소감 발표회 ▲평화기념식전 ▲원수폭금지세계대회 폐회식 ▲피폭 희생자를 추모하는 ‘토로나가시(とうろう流し)’ 등의 일정을 소화했다.

8월 4일, 피폭자 의료의 원점을 가다

한국의료인대표단은 첫째날인 4일에는 피폭자의료와 권익향상 운동의 중심이 된 히로시마공립병원(広島共立病院)에 방문해, 피폭자 2세로서 피폭자 의료에 평생을 바쳐 온 아오키 가츠아키(青木克明) 원장의 강연을 들었다.

▲ 히로시마공립병원 전경
▲히로시마공립병원 역시 피폭지로, 피폭의 참상을 그린 '원폭 회석(그림 비석)' 이 세워져 있다.

이날 강연은 장장 3시간에 걸쳐 진행됐으며, 아오키 원장은 히로시마 원폭의 피해규모, 피폭자 의료의 역사, 현황, 진행과정, 조선인 피폭자에 대해 구체적으로 다뤘다. 특히 그는 예산을 이유로 원폭 질병 인정 범위를 축소하려는 일본 후생노동성에 대항한 소송과 그 중요성에 대해 피력했다.

아오키 원장은 "원폭으로 인한 질병 범위의 확대는 얼마 남지 않은 생존자에 대한 시급한 지원은 물론 아직까지 전부 밝혀지지 않은 피폭 피해의 근거를 만드는 일이다. 이를 위해 피폭자들과 함께 계속해서 운동해 나가야 한다“면서 "아울러 이 운동은 핵무기 폐절의 당연성과 평화헌법 9조를 지키고 나아가 미래세대를 위한 평화를 만드는 일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피폭자 의료'에 관해 강연 중인 아오키 원장
▲ 진지하게 강연을 경청 중인 한국으료인대표단 일동. 3시간의 강연동안 아무도 졸지 않은 기적(!)을 선보여 아오키 원장님이 매우 감동하셨단 후문.

참고로 1966년 진료소로 시작한 히로시마공립병원은, 현재 히로시마의료생협 조합원만 4만 명을 거느린 규모 있는 병원으로 성장했다. 이 병원은 피폭자 진료를 중점적으로 하고 있으며, 피폭자 인정 소송에도 적극 참여하고 있다.

아울러 히로시마공립병원은 2011년 후쿠시마 원전사태로 히로시마에 피난 온 시민들 350여 명 중 희망자를 대상으로, 방사선 노출로 인해 발생하기 쉬운 갑상선암에 대한 초음파 검사, 집단검사, 상담 등을 실시하고 있다.

▲히로시마공립병원 바로 옆에 위치한 히로시마의료생협. 히로시마공립병원은 본 건물 옆 주차장에서 진료소로 시작했다.
▲ "건배!"를 외치며 본격적으로 한국 의대생과 민의련 소속 일본 의대생간의 교류회가 시작됐다.
▲ 교류회 참가자 일동과

한편, 이날 강연 후 한국의료인대표단은 히로시마의료생협 건물로 이동해 ‘한‧일 의대생 및 연수의간 교류회’에 참석했다. 이날 교류회에는 일본 전역에서 모인 민의련 소속 의사, 연수의 및 의대생 17명을 비롯해 히로시마 민의련 임원단 등이 참석해 풍성한 만남의 시간을 가졌다.

김준형 학생이 한국 의대생 대표로 나서 “히로시마에 오기 전 사전모임을 통해 히로시마에 대해 배우면서 히로시마 원폭 피해에 대해 더욱 알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며 “이번 일정이 끝날 때 쯤 이면 히로시마는 역사시험에 나오는 사실이 아닌 우리들 가슴에 남는 반전의 교훈, 희생자들의 아픔이 될 것이다”라고 밝혔다..

이어 그는 “이번에 민의련 분들과 일본 의대생 분들과의 만남과 히로시마 현장에서의 체험이 우리들 모두에게 있어 각자의 미래를 있게 할 소중한 계기가 될 것”이라고 기대감을 전했다.

8월 5일, “기억하자, 항의하자, 그리고 살아나가자”

둘째날, 한국의료인대표단은 히로시마 평화기념자료관에 방문했다. 자료관에는 히로시마에 떨어진 세계최초의 원자폭탄 일명 ‘리틀보이’에 의해 파괴된 수많은 생명과 당시의 참상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유품과 자료들이 전시돼 있다.

▲원폭 열선에 의한 참상을 기록한 그림과 유품들
▲원폭을 고스란히 받아낸 원폭 돔. 폭심지에서 거의 유일한 콘크리트 건물이었다.

특히, 자료관 지하 1층 ‘특별전시실’에는 최근 기증된 유품 74점이 전시돼 있다. 이것들은 ‘이제 더 이상 전쟁과 원폭으로 괴로워하는 사람이 없도록’하는 희생자들과 유족들의 염원을 담았다. 기억의 반복을 통해 평화를 구축해나가자는 것.

민의련 후지스에 마모루 회장은 일본의 희극작가 이노우에 히사시가 자료관에 남긴 글귀인 ‘기억하자, 항의하자, 그리고 살아나가자’(’記憶せよ、抗議せよ、そして生きのびよ')의 의미에 대해 설명했다.

후지스에 회장은 “이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기억하자’란 말이다. 항의할 용기가 없는 사람도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기억하는 것”이라면서 “이런 작은, 소심한 용기들이 모이고 모여서 결국 사회를 변화시키는 힘이 되는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미국 오바마 대통령이 지난 5월 방문해 접고 갔다는 학. 이에 대해 히로시마 민의련 사사키 회장은 "오바마 대통령이 다녀갔다는 사실이 핵무기 폐기로 이어지는 건 아니다. 피폭자들과 함께 동시대인으로서 두번다시 전쟁이 없도록 함께 계속해서 투쟁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원폭 생존자인 토게 산키치 시인의 시집을 의대생에게 전달하는 후지스에 회장. 참고로 토게 산키치 시인의 형인 토게 카즈오씨는 민의련 초대 사무국장을 역임하는 등 민의련과 연관이 깊은 시인이다.
▲한국인 희생자 위령비 앞에서 묵념하는 한국의료인대표단

이어 한국의료인대표단은 피폭 생존자 오가타 스미코씨(84세)를 만나 피폭체험을 듣는 시간을 가졌다.

당신 말로 ‘운 좋게 살아 남았다’는 오가타씨는 원폭투하 당시 13세로 당시 일을 비교적 선명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는 폭심지로부터 고작 700m 떨어진 곳에서 살아남았다. 그는 피폭 후 57년 만에 ‘입 밖으로 낼 수조차 없는’ 괴로운 기억을 딛고 얼마 남지 않은 피폭체험자로서, 생애 마지막에 피폭의 경험을 전하고 평화 헌법 9조를 지키는 일을 사명처럼 해나가고 있다.

한국의료인대표단은 오가타씨의 피폭 증언을 듣고 원폭의 참상과 살아남은 자의 고통와 사명을 생각하며 사뭇 심각해졌다. 정지현 학생은 “그래도 소녀처럼 웃으시는 걸 보니 더 마음이 아프다. 꼭 안아드리고 싶다”고 소감을 전했다.

▲ 피폭생존자 오가타 스미코씨(왼쪽 아래 두번째), 그녀의 주치의인 히로시마 민의련 후지와라 전 회장

한편, 이날 저녁 히로시마 호텔센추리21에서는 ‘원수폭금지세계대회 민의련참가자교류집회’가 열렸다. 민의련은 이날 건배사를 통해 “원폭으로 목숨을 잃은 조선인 희생자들을 기억합시다”라며 “그리고 국민의 건강과 인권을 지키기 위해 기억하고 싶지 않은 것을 기억하면서 투쟁해 나갑시다”라고 결의를 다졌다.

교류집회 후 한국의료인대표단은 민의련 임원진과 별도의 교류회를 갖고, 일정 중간을 지나는 소감을 나눴다. 발표에 나선 고은산 학생은 “히로시마에서 보고 느끼고 배운 것들을 통해 의사로서의 관점을 확대할 수 있었다”라며 “일본과 한국에서도 투쟁의 시대는 아직 끝나지 않았고 죽음과 질병을 만드는 사회와 싸우는 것도 의사의 길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연결돼 있다”고 밝혀 장내를 훈훈하게 만들었다.

이에 후지스에 회장은 “함께 노력하는 동료들이 늘어나서 기쁘다. 앞으로 이런 교류가 더욱 확대됐으면 한다”며 “각자 위치에서 건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힘냅시다”고 답했다.

▲원수폭금지세계대회 민의련참가자 교류집회에 참가한 한국의료인대표단
▲ 민의련 임원진과의 교류에서 소감을 발표하는 고은산 학생
▲민의련 후지스에 회장(오른쪽 두번째)와 기념사진을 촬영했다.

8월 6일, 핵무기를 ‘절대악’으로 규정한 평화선언

1945년 8월 6일 오전 8시 15분, 히로시마시 중심부에 원자폭탄이 떨어진 날이다. 올해로 피폭 71년을 맞은 지난 6일, 평화공원에서는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는 평화기념식이 열렸다.

▲ 평화기념식전이 열리는 평화공원에 모인 사람들

히로시마시 마츠이 카즈미(松井一實) 시장은 핵무기를 ‘절대악’으로 규정하면서 “핵무기를 이 세상에서 추방하는 길을 닦자는 히로시마의 뜻을 기초로 열정을 갖고 연대하고, 행동해야 한다”면서 “핵무기 없는 세상을 실현하기 위해서 정부는 핵무기금지의 법제화는 물론, 피폭자 지원, 흑우피해지역을 확대해야 한다”고 강력 촉구했다.

이날 기념식에는 한국의료인대표단을 비롯해 피폭자, 유가족 등 내외빈 5만여 명(시 발표)이 참석했으며, 지난 5일까지 사망이 확인된 피폭자 5,511명의 명단을 유가족 대표들이 위령비에 납입했다. 현재 히로시마에서 피폭으로 인한 사망자 수는 30만 3,195명이다. 참석자들은 원폭투하 시각인 오전 8시 15분에 ‘평화의 종’ 소리에 맞춰 1분간 묵념했다.

▲히로시마현립체육관에서 열린 '원수폭금지2016년세계대회'
▲원수폭금지2016년세계대회에 참석한 한국의료인대표단

이어 한국의료인대표단은 오후에 히로시마현립체육관에서 열린 ‘원수폭금지2016년세계대회’ 폐회 총회에 참석했다.

세계대회에서는 핵무기 없는 세계 실현을 위한 ‘구체적이고 효과적인 법적 조치’를 논의하는 유엔 실무그룹(OEWG)이 핵무기 금지 및 폐기 조약의 협상을 시작할 것을 강력 촉구했다. 아울러 핵보유국의 대변자 역할을 해 온 아베정권을 맹비난하면서 “세계평화를 지키는 보물과 같은 헌법 9조를 지켜야 한다”고 호소했다.

이날 한국의료인대표단은 폐막 총회에 참석한 일본 시민단체들과 함께 무대에 올라 평화‧생명‧삶을 지키기 위한 ‘핵무기 없는 세상’을 위한 연대의 뜻을 표했다.

한국의료인대표단은 마지막 일정으로, 섭씨 1백만도가 넘는 원폭의 열선을 견디지 못하고 강에 뛰어든 사람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히로시마 평화공원을 가로지는 강에 ‘등롱’을 띄어보내는 행사에 참여했다.

▲일본 시민단체들과 함께 무대에 올라 폐막총회 피날레를 장식(?)하고 있는 한국의료인대표단
▲'토로 나가시'
▲ 7일, 한국으로 출국! (ⓒ西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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